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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터틀트레이딩 (마이클 코벨) (1편) - 리처드 데니스의 실험, 천재 트레이더의 등장, 터틀 수련생, 투자 철학

메타닷 2023. 6. 14. 2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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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틀 트레이딩은 강환국 작가님의 유튜브 채널에서 처음 접하게 되었다. 

그 후 검색도 해보며 알아보려 노력했지만,

관련 책만 검색되고 자세한 내용을 알기는 어려워,

아래 마이클 코벨 저자의 책, 터틀트레이딩을 구입하여 읽게 되었다. 

 

이 책의 머리말을 보면,

터틀트레이딩에 대해 쉽고 간략하게 설명해 놓은 구절이 있다. 

 

" 이 책은 월가 경험이 없는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이

어떻게 백만장자 트레이더로 훈련되었는지에 대한 얘기다. 

군중을 따르지 않고 틀에서 벗어나면 시장을 이겨 큰돈을 벌 수 있다.

사람들은 분명 시장과 겨루는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

하지만 규칙을 잘 지키고 옳은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이런 규칙과 자세는 인간의 본성과 정면충돌한다. "

 

 

1편에서는 터틀트레이딩의 등장 배경과, 

어떤 규칙과 자세를 중요시하는지 그 투자 철학에 대해 정리해보았다. 

 

 

[BOOK] 터틀트레이딩 (마이클 코벨)

 

1. 리처드 데니스의 실험 

[매매능력은 타고나는 것인가, 터득할 수 있는 것인가]

  - 리처드 데니스가 운영하는 회사인 C&D 커머더티스는 1983년 늦가을 수련생을 모집한다는 구인광고를 냈다. 이 광고는 시카고에서 가장 잘 나가는 트레이딩 회사에 들어갈 수 있는 초대장이었고, 덤으로 '매매기법을 익힐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 다양한 부류의 지원자를 모집한 것은, 동료인 윌리엄 에크하르트와 10년간 벌여온 논쟁의 답을 찾기 위한 리처드 데니스 계획의 일부였다. 매매능력이 선천적인가, 후천적인가에 대한 논쟁이다.

  - 리처드 데니스는 시장에 대한 것은 무엇이든 가르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만, 돈을 바라보는 관점이 적절해야 한다는 전제가 우선적으로 필요하다고 보았다. 반면, 윌리엄 에크하르트는 훌륭한 트레이딩은 타고난 재주가 있어야 가능하다는 믿음이 확고했다. 

  - 리처드 데니스의 목적은 자신의 정신적 소프트웨어를 수련생들의 뇌에 심은 뒤 통제된 환경에 집어넣은 다음 이들이 어떻게 반응하고 성과를 내는지 보는 것이었다. 

  - 수련생들은 성품이 온화한 학자 스타일에서부터 평범한 블루칼라 타입과 성격이 거칠고 들쭉날쭉한 사람까지 천차만별이었지만, 리처드 데니스가 그들에게 바라는 것을 갖고 있었다. 그는 위험을 정확히 계산해 확률이 큰 곳에 과감히 투자하는 스타일의 수련생을 원했다. 

  - 리처드 데니스와 윌리엄 에크하르트는 채권, 통화, 옥수수, 오일, 주식, 그 외 다른 모든 것을 매매하는 데 필요한 모든 기법을 단 2주 동안 가르쳤다. 

  - 수련생들은 수업을 마친 뒤 각자 투자금을 백만 달러씩 배정받았다. 이익이 나면 15%는 수련생 몫이었고, 85%는 리처드 데니스가 가져가는 구조였다. 

  - 여러 대리인을 시켜 트레이딩하는 아이디어는 훌륭한 결정이었다. 여러 수련생들이 4년 넘게 연간 100% 이상의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다. 엄청난 성공이었다. 

  - 실험이 끝나고 긴 세월이 지난 2007년, 윌리엄 에크하르트와 수련생 출신인 제리 파커 주니어와 폴 라바는 30억 달러가 넘는 자금을 운용하고 있고, 터틀 실험 때와 아주 비슷한 방식으로 트레이딩하고 있다. 

  - 리처드 데니스의 터틀 실험은, 조건이 동일하다면 수련생들이 매매기법을 익혀 엄청난 돈을 벌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보스턴 레드삭스의 거포인 데이비드 오티스 처럼 날마다 '끝내기 홈런'을 치겠다는 각오가 없었다면 실패로 끝났을 것이다. 결국 용기라는 적절한 처방에 승리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수련생들이 오래 생존할 수 있었던 요인이리라. 

 

2. 거래소의 왕자 

[단숨에 억만장자가 된 천재 트레이더의 등장]

  - 1986년은 리처드 데니스에게 최고의 해였다. 그해 8000만 달러나 벌었기 때문이다. (2007년 가치로 따지면 1억 4700만달러)

  - 그가 돈을 버는 스타일은 여러 번 삼진을 당한 뒤 초대형 홈런을 날리는 식이었다. '비결'이 있다면 손실을 심리적으로도 견디고 생리적으로도 감내할 수 있어야 함을 알았다는 것이다. 

  - 리처드 데니스는 터틀 실험을 시작하기 훨씬 전부터 성공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열일곱 살에 시카고상업거래고에서 시금 1.6달러짜리 사환 일을 하며 여름을 보냈다. 리처드 데니스는 직접 트레이딩 하기를 원했지만, 플로어에서 매매하려면 스물한 살이 넘어야 했으므로 아버지에게 부탁해 자기 대신 플로어에서 트레이딩 하도록 하여 이 난관을 넘었다. 십 대에 트레이딩으로 돈을 꽤 벌었지만, 드폴대학에 들어가 고교 때부터 지녔던 철학에 대한 열정을 다시 불살랐다. 그는 세상을 비교적 단순하게 바라보는 영국 철학자 데이비드 흄과 존 로크에 심취했다. 

  - 리처드 데니스를 회의주의자로 만든 것은 영국 철학만이 아니었다.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 초반에 자라다 보니 반체제적 세계관이 자연스레 형성되었다. 그는 1968년 폭동 당시 숭엄한 시카고상품거래소 바로 옆에서 시위자들이 시카고 경찰에 의해 두들겨 맞는 모습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는데, 이 사건이 전환점이 되었다. 

  - "트레이딩을 하면서 통념을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는 점을 배웠지요. 제가 트레이딩으로 돈을 벌었다는 것은 다수 의견이 옳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대다수는 십중팔구 틀립니다. 시장은 때때로 미친 군중처럼 비합리적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일반 대중의 경우 잔뜩 긴장하면 대개 잘못된 방향으로 갑니다."

  - 리처드 데니스는 드폴대학을 졸업한 후 시카고 거래소로 돌아와 전업 트레이딩을 시작했다. 그는 부모님으로부터 빌린 돈으로 미드아메리칸 상품거래소 회원권을 구입했고, 초기 투자자금 100달러는 형제인 톰이 피자배달로 마련한 것이었다. 

  - 스물네 살이 되던 1973년 초까지 그는 10만 달러를 벌었다. 그가 돈을 너무 빨리 벌었기 때문에 그의 인터뷰 내용은 불과 몇 주나 며칠 만에 한물간 얘기가 되어버렸다. 

  - 트레이딩에 집중하기 어려울 정도로 사회가 시끄러웠던 1974년, 그는 대두가격이 급등하는 동안 레버리지를 이용해 50만 달러를 벌었다. 그해 말 스물다섯의 나이로 그는 백만장자가 되었다. 

  - 리처드 데니스는 성격도 유별났지만, 트레이딩 능력도 남달랐다. 그는 침착함을 유지하고, 트레이딩을 할 때 과도한 직관에 빠질 위험을 경계하고 점검하기 위해 경제지표나 작황과는 무관한 '사이콜로지 투데이'를 읽었다. 

 

1) 미드아메리칸거래소에서 쌓은 경험

  - 리처드 데니스는 미드아메리칸거래소에서 처음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지만, 카지노 운영자처럼 생각하는 법을 익혔다. 상품거래소 사람들은 늘 그렇게 해와서 새롭지 않았지만, 미드아메리칸거래소에서는 이런 발상이 혁명적이었다. 당시에는 거래량을 늘려서 위험을 적절한 수준으로 맞출 수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 초기에는 급등락으로 타격이 컸지만, 따끔한 맛을 본 뒤 몇 달 안에 교훈을 터득했다. "실패 과정을 정식적으로 극복해야 한다"라고 그가 털어놓았다. 

  - 동료 트레이더 톰 윌리스와 로버트 모스가 리처드 데니스를 만난 시점은 1972~1973년 즈음이었다. 그는 톰 윌리스에게 이런 팁도 줬다. "밀을 산 뒤 5포인트 상승하고 반대로 대두는 너무 많이 하락하면, 매수했던 밀을 매도하는 대신 대두를 파는 게 어때?" 이는 아주 통찰력 있는 전략이었다. 사실 요즘에도 가격이 '오를' 때 사고, '내릴' 때 판다면 투자자들은 어리둥절해할 것이다. 저가에 매수해서 고가에 매도하는 방법과는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 천생 선생 스타일인 리처드 데니스는 다른 트레이더들에게 자신의 지식을 이미 대가 없이 전수하고 있었다. 리처드 데니스가 매매기법에 대해 강의하는 방 한 칸짜리 아파트에는 50~60명이 들어찼다. 그와 톰 윌리스는 특히 '유동성'을 강조해 가르쳤다. 미드아메리칸거래소가 시장의 신뢰를 얻어 살아남기 위해서는 매수자와 매도자 수가 일정 수준을 넘어야 했다. 이 교육으로 양질의 트레이더도 많아지고 거래소 사정도 나아졌다. 그리고 이런 트레이더들이 돈을 벌기 시작했다. 

 

2) 시카고상품거래소

  - 세계 최대 선물시장인 시카고상품거래소에서 매매를 시작한 그는 차분한 스타일로, 플로어에서 거친 몸동작과 고성으로 매매신호를 보내는 다른 트레이더들과 대조를 이루었다. 

  - 톰 윌리스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말했다. "리처드 데니스는 시카고상품거래소로 옮기더니만 엄청난 홈런을 날렸다. 젊은 그가 피트 전체를 휘어잡았다. 옥수수 선물 가격이 상승하고 대두가 2포인트 오른 뒤 옥수수가 3포인트 떨어지면, 리처드 데니스는 다른 트레이더들로부터 대두를 1.5포인트나 올려 100만 부셀을 사들인다. 그런데 장기 마감될 때는 대두가 7포인트나 상승해 있다. 대두를 매도했던 사람들이 '저 친구 뭐지?' 하며 수군거린다."

  - 그의 동료들은 그의 몸무게(135kg)가 엄청났지만, 플로어에서 매매할 때에는 고양이처럼 재빠르게 대응했다고 밝혔다. 

 

3) 피트를 떠나다

  - 1970년대 트레이딩 플로어는 매우 역동적이었지만, 더욱 크게 성공하기 위해서 리처드 데니스는 거래소를 떠나야만 했다. 

  - 리처드 데니스는 피트를 떠나면서 강세에 사고 약세에 파는 전략을 더욱 잘 활용할 수 있게 되었다. 기존 전략이 대두와 옥수수 시장에서 잘 작동한다면, 금과 주식시장, 그리고 다른 모든 시장에서도 통한다고 보았다. 

  - 그는 더욱더 큰 세상에서 거래하기 위해 시카고상품거래소 건물 23층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1975년 11월 그는 이사를 하는 동시에 래리 캐롤과 파트너십 회사를 차렸는데, 이때 C&D 커머더티스가 탄생했다. 

  - 플로어를 벗어나자 어려움을 겪었으나, 1년에 5000만달러를 벌겠다는 목표를 실제로 이뤄냈다. 기대수익이나 아이디어가 좋으면 바로 스크린 앞으로 가서 실행에 옮겼다. 실제로 결과가 괜찮으면 스크린으로 가서 20명이 똑같이 거래하도록 했다. 

  - 거래할 수 있는 모든 시장에서 매매해 돈을 더 많이 벌겠다는 그의 목표는 1년 안에 계획대로 달성되었다. 

  - 리처드 데니스는 날마다 재산이 불었지만, 사무실에는 여전히 반핵 포스터가 걸려있었고, 거래소의 서로 어울리는 분위기와도 떨어져 있었다. 그는 주목받는 것을 즐기지 않았다. 

  - 그는 단타는 노리지 않았다. 베이브 루스처럼 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쳐내 떼돈을 노리는 스타일이었다. 

  - 그의 제자인 얼 키퍼는 그의 기이함을 넘는 탁월한 트레이딩 실력을 다음과 같이 극찬했다. "리처드 데니스는 제가 만난 사람 중에서 가장 뛰어난 총잡이이다. 엄청난 압박을 잘 견디며 돈을 꼭 붙들고 있다가, 다른 사람들이 지쳤을 때 방아쇠를 당긴다. 정말 대단하다. 매매기법이 뛰어나다기보다 타고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

  

4) 정치적 야망

  - 모범적인 정치인과 여러 사회적 약자에 특히 관대했던 리처드 데니스는 미국에서 민주당에 가장 많이 후원하는 사람 중 한 명이 되었다. 대중의 관심이 더욱 필요한 부분에 관심을 더 가졌다. 그는 자칭 진보자유주의자였지만, 극좌익 흑인단체에서 활동한 적이 있던 보비 러시에게도 1000달러를 기부했다. 

  - 그는 빌 브래들리 상원의원과 친분을 유지했으며, 대통령에 출마하는 월터 먼데일과 브루스 배빗을 적극 후원하기도 했다. 

  - 하지만 사회적 약자를 지지한다는 이념을 기반으로 성공적인 정치인이 되는 것은 큰돈을 버는 일만큼 쉽지 않았다. 단순한 자금 지원으로는 충분하지 않았기에, 리처드는 그들과 함께 '행동'하고 장애물을 정면 돌파하기를 원했다. 하지만, 정치는 승패가 확실한 제로섬 게임이 아니었기 때문에, 결국 그는 좌절했다. 

  - 리처드 데니스는 1982년 워싱턴에 루스벨트 미정책연구소라는 싱크탱크를 신설했을 때부터 곤경에 처하기 시작했다. 워싱턴은 돈을 아무리 많이 가지고 있어도 상대하기 어려운 시장이었다. 

  - 결국 그는 리버티 미디어 회장 존 맬런, 페덱스 대표이사 회장 프레데릭 스미스 같은 거물들을 지원하는 자유주의 케이토 연구소 이사회의 일원이 되었고, 아울러 다른 진보 연구단체인 리즌 파운데이션 이사회에도 합류했다. 

  - 리처드 데니스의 짧은 정치 여정은 결코 순탄하지 않았다. 

 

5) 거친 바다

  - 1986년 리처드 데니스는 크나큰 성공을 맛보기 전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정치적 열망 때문에 초점을 잃을 듯했고, 자기 돈 이외에 남의 자금까지 운용하게 되면서 책임이 더욱 무거워졌다. 

  - 1983년에 난 손실에서 원금이 회복되기까지 2년 넘게 걸린 고객들이 많았는데, 투자자 대부분이 끝까지 붙어있지 않아, 결국 1984년 몇몇 계좌를 청산할 수밖에 없었다. 고객 자금을 자신의 돈으로 하듯 공격적으로 운용하면, 투자자들이 심리적으로 견디기 어렵다는 점을 그는 인정했다. 

  - 1983년 리처드 데니스는 고객 돈을 맡아 운용하는 생쥐 경주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이론만 앞세우기보다 마리화나 합법화 운동에 더욱더 집중하거나, 참을성 없고 지식이 부족한 고객들에게 의존할 필요가 없는, 어떤 전반적인 전략을 구상하는 쪽으로 방향을 돌리고 싶었다. 

  - 여러 면에서 터틀 수련생 실험은 자신의 인생 2막을 여는 것임을 그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만 해도 그는 그 일이 자신의 삶도 바꾸고 트레이딩의 역사를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변화시켰다는 사실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3. 터틀 수련생 

[경비원, 이민자, 게임 개발자... 이들이 트레이더가 된다고?]

  - 터틀 수련생 실험은 위험이 따르는 일이었다. 수련생들이 그의 기대를 저버릴 수도 있었고, 더 나아가 그의 비법을 훔쳐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았다. 

 

1) 어쩌다... 인생역전

짐 멜닉 지원자들은 리처드 데니스의 관심을 얻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는데, 그 중 짐 멜닉이 가장 두드러지고 특이했다. 과체중의 그는 보스턴 노동자 출신으로 시카고 교외 술집에서 일했다. 리처드에 대한 얘기를 듣고 시카고로 건너왔고, 결국 시카고상품거래소 경비원이 되어, 리처드 데니스가 건물에 들어올 때마다 인사했다. 때마침 구인광고가 났고, 짐 멜닉도 수련생으로 선발되었다. 그야말로 무일푼에서 거부가 된 대표적 사례다. 
마이크 섀넌 열여섯에 학교를 그만두고 배우가 된 마이크 섀넌도 문을 두드렸다. 그는 형편없는 상품 브로커였으나, 거짓 이력서를 꾸며 지원했다. 합격하기 위해 대담한 짓을 한 것이다. 하지만 별난 C&D 커머더티스 대표에게 이런 비상식이 통했다. 
짐 디마리아 노트르담 대학 출신인 짐 디마리아는 지원당시 트레이딩 플로어에서 리처드 데니스와 함께 일하고 있었다. 
마이클 카발로 마이클 카발로는 하버드대학 MBA 출신으로, 보스턴의 잘나가는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얼 키퍼 전직 미공군 조종사였던 얼 키퍼는 뉴욕 시내 사우나에서 쉬고 있는데, 데니스의 신문광고를 보고 우연히 알게 되었다. 
리즈 체블 여성 지원자도 있었는데, 작지만 당찬 이미지의 리즈 체블도 그중 한명이었다. 그녀는 증권회사에서 일했지만, 영화 제작을 적극 고려하고 있었다. 
제프 고든 작은 변호사 사무실을 차려 일하고 있던 제프 고든도 우연히 신문을 뒤적이다 광고를 보았다. 
지리 조지 스보보다 공산국인 체코슬로바키아에서 이민 온, 지리 조지 스보보다는 누가 봐도 허우대는 좋은데 약해 보인다. 그는 '브레이킹 베이거스' 출간과 1990년대 유명했던 MIT 공대 출신의 블랙잭 팀 이야기 훨씬 이전에 라스베이거스를 뒤흔들었던 블랙잭의 대가였다. 
톰 생크스 톰 생크스는 여자를 다루는 재주가 뛰어나, 낮에는 헐 트레이딩에서 컴퓨터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밤에는 라스베이거스에서 블랙잭으로 돈을 벌었다. 
마이크 카 마이크 카는 온라인 전략게임인 던전 앤 드래곤을 개발해 명성을 쌓고, 자신이 만든 '전투 게임'을 신봉하는 추종자들까지 거느리고 있었다. 그 뒤 '파이트 인 더 스카이'라는 보드게임도 개발했다. 
제리 파커 제리 파커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자, 겸손한 회계사로서 머리를 단정하게 옆으로 넘기고 다녔다.

  - 리처드 데니스는 찾으려는 대상이 분명했다. 수학적 소질이 뛰어나고, 대입 성적이 높은 사람을 원했다. 컴퓨터나 매매기법에 관심이 있는 후보도 찾았다. 시스템 짜는 일을 한 사람들에게는 가산점을 주었다. 게다가 채용된 지원자들 대부분이 게임(체스나 주사위 게임)에 관심이 많았다. 

  - 리처드 데니스와 윌리엄 에크하르트는 후보자들에게 확률적으로 사고하는 능력이 있는지 알고 싶었다. 돈을 추상적으로 다룸으로써 돈을 더 많은 수익 창출을 위한 도구로 활용하는 데 집중할 수 있는, 정서적 심리적으로 뛰어난 사람을 원했다. 

  -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의 자아를 집단에 포함시킬 수 있는 사람에게 특히 관심을 보였다. 

  - 선발된 수련생들은 부류가 정말 다양했다. 문화적, 사회적, 성적, 정신적 기질 면으로도 각양각색이었다. 

 

2) 일생일대의 면접

마이크 섀넌 - 리처드 데니스에 대해 알 수 있는 데까지 철저히 조사하기 위해 '시카고 트리뷴' 언론사의 지하 자료실까지 찾아갔고, 리처드 데니스가 무슨 옷을 즐겨 입는지도 조사했다. 
- 리처드 데니스와 마이크 섀넌은 둘다 어렸을 때, '리스크'라는 보드게임을 좋아했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상대 영토를 얻기 위해 공격도 하고 자기 땅을 지키기 위해 수비도 해야 하는 영토 정복 게임이다. 리처드 데니스는 예측하기 어려운 사람이었지만 결국 승리했다. 
폴 라바 - 수련생 중 트레이딩 경험이 가장 많은 것으로 밝혀졌다. 리처드 데니스에게 선발되기 전에는 척 리 보 밑에서 트레이딩을 익혔다. 이들은 여러 부류의 고객 돈을 맡아 거래해주는 단순 브로커였다. 
- 폴 라바 인터뷰에서는 트레이딩과 관련된 아주 세부적인 부분까지 다뤄졌다. 폴 라바의 채용은 그의 지식덕분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는 특별한 케이스였다. 리처드 데니스는 폴 라바 같은 사람들로만 수련생을 채우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얼 키퍼 - 얼 키퍼는 영국 경험주의에 대한 얘기로 대화를 시작했다. "현실이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얘기한 직후 조지 버클리의 소설 '하일라스와 필로누스'에 대해 깊이 있게 토론했다. 
- 데니스가 얼 피커에게서 찾고자 했던 특징 가운데 하나는 현실에서 자신의 믿음을 일시적으로 정지시킬 수 있는 능력이었다. 
마이클 카발로 - 그는 '아주 똑똑한 사람과 심도 있는 대화'를 한다는 자체가 만족스러웠기 때문에 면접에서 떨어져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 시장에 대한 그의 지식을 0점부터 100점 사이의 점수로 답하라고 물었는데, 그는 '60점'이라고 했다. 좋은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 그 수준이라고 생각해 그렇게 말했다고 한다. 
- 인터뷰를 마치고 방을 나왔을 때, 데일 델루트리가 인터뷰는 어땠냐며 물었다. 마이클 카발로는 그 질문 자체도 인터뷰의 일부라는 사실을 바로 알아채고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고 대답했다. 
마이크 카 - 누구를 가장 존경하느냐는 질문에 마이크 카는 '롬멜'이라고 대답했다. 이는 정치적으로 잘못 해석될 여지가 충분히 있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사막의 여우로 유명한 어윈 롬멜 육군원수는 2차세계대전 때 활동했고, 독일사람이었지만 나치는 아니었다. 무엇보다도 그분은 장군으로서 남자로서 아군과 적군 모두로부터 아주 존경받는 인물이었다."
- 던전 앤 드래곤 관련 경력이 C&D커머더티스의 까다로운 면접을 통과하는데 핵심 역할을 한 듯 하다. 데일 델루트리와 윌리엄 에크하르트 모두 자기 아들이 그 게임을 즐긴다고 했기 때문이다. 
- 하지만 리터드 데니스의 트레이딩 스타일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언 탓에 인터뷰 도중 약간 헤맸다. 
제프 고든 - 제프고든은 선발 기준이 결국 '게임'관련 기질로 귀결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법대 재학 시절 공부보다 체스에 더 많은 시간을 쏟았다는 내용으로 썼다. 
짐 디마리아 - 이미 리처드 데니스의 브로커로 일해 내부자라 할 수 있는 짐 디마리아는 트레이더로 성공하겠다는 포부에 출신지가 얼마나 중요한 지 알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에게 시카고의 기질이 있다고 밝혔다. 
- 짐 디마리아는 수련생으로 선발되기 전부터 단순 브로커가 아니라 스스로 매매결정을 내리는 트레이더가 되겠다는 야망을 품고 있었다. 
리즈 체블 - 리즈 체블은 그 자리까지 온 것만으로도 믿기지 않았기 때문에 인터뷰에 자신 있게 응했다. 선발되기만 하면 적어도 몇 주일 동안 리처드 데니스 밑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이력서에 넣을 수 있었기 때문에 솔직히 잃을게 없었다. 

- 선발 과정은 헤드헌팅 회사가 일반적으로 진행하는 절차와는 완전히 딴판이었다. 트레이딩으로 엄청난 돈을 버는 것과 살아있는 인간을 대상으로 '선천적 능력이 중요한지, 후천적 교육이 중요한지' 알아보기 위해 실험하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이었다. 

 

3) 터틀 계약

  - 트레이딩 자문 수련생 계약

- 계약 기간은 5년이며, 리처드 데니스 쪽에서 예고없이 언제든 일방적으로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 
- 수련생은 미리 지급받은 돈을 반환할 의무가 없고, 이를 향후 얻게 될 성과보수에서 차감하지도 않는다. 또한 수련생은 좋지 않은 트레이딩 결과로 생기는 손실에 대한 책임도 없다. 
- 수련생이 앞으로 터득하게 될 리처드 데니스의 '비법'으로 서둘러 돈을 벌겠다고 생각할 경우, 이를 묶어두는 조항도 있었다.
- 계약 기간 중 자신의 돈을 운용할 수 없고, 리처드 데니스 외의 다른 사람의 자금을 굴리는 행위도 금지되었다. 
- 리처드 데니스에 대항하거나 수련 기간 중 알게 되는 비밀 또는 고유 정보도 누설하지 못하도록 했다. 
- 리처드 데니스 고유의 트레이딩 기법을 게약 종료 후 5년 동안 공개할 수 없도록 했다.

 

4) 터틀 수업

  - 리처드 데니스의 명성과 천 명 이상의 지원자 중에서 선발되었다는 자긍심 덕분에 수련생들은 심리적 장벽을 쉽게 뛰어넘을 수 있었고, 두 명의 트레이딩 슈퍼스타에게 선택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들에게는 충분히 동기부여가 되었다. 

  - 수련생들의 수업 장소는 시카고 시내에 있는 유니언 리그 클럽이었다. 그곳은 오래전 시장에서 큰돈을 번 사람들을 위한 구닥다리 요새였다. 터틀 수련생들도 유니언 리그 클럽에서 2주 동안 수업을 받았다. 트레이닝 룸에 있는 24명 이상의 수련생 중 절반만이 터틀이었다. 

  - 터틀 수업 첫날, 처음 몇 시간은 델리 델루트리가 전반적인 과정에 대해 안내해 준 뒤 트레이딩 경험이 전혀 없는 수련생들에게 기초적인 내용들을 설명했다. 그 후 윌리엄 에크하르트가 첫 강의 주제인 위험관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돈 버는 법에 대한 강의로 시작하는 대신 돈을 잃었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대한 기초부터 가르쳤다. 

  - 시간이 지나면서 긴장이 사라지자 수련생들은 질문도 던지고 토론도 하기 시작했다. 그렇더라도 수업은 주로 강의와 그 내용을 받아 적는 식으로 이뤄졌다. 

  - 2주간의 수업 중 터틀 수련생들에게 많은 내용을 가르친 사람은 윌리엄 에크하르트였다. 아이러니하게도 훈련으로 트레이딩 능력을 향상시킬 수 없다는 쪽에 베팅한 윌리엄 에크하르트가 수련생들에게 기초적인 내용들을 많이 가르친 것이다. 리처드 데니스는 트레이딩 현장에서 벌어진 전쟁 같은 이야기와 일화에 대한 일련의 강의를 했다. 

  - 많은 사람들이 윌리엄 에크하르트가 터틀 실험에서 정신적인 측면에만 기여하고 숟가락만 얹었다고 알고 있는 듯하다. 하지만 그는 시스템도 '공동으로 개발했고' 수련생들도 '함께 가르쳤다'는 사실을 공식적으로 강조한다. 윌리엄 에크하르트가 없었다면 터틀도 없었을 것이다. 

  - 윌리엄 에크하르트는 트레이딩의 선천성과 후천성 논쟁에서 자신이 졌다고 늘 순순히 인정했다. 기법을 잘 가르치면 트레이딩을 잘할 수 있다고 대답했고, 아울러 그는 터틀이 순전히 운이 좋아 성공했다는 주장을 일축했다. 

  - 터틀 실험이 성공한 까닭이 아주 똑똑한 사람들만 선발했기 때문이라고 비판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윌리엄 에크하르트는 훌륭한 트레이딩과 지능 사이에는 상관관계가 높지 않다고 강조하며 이 같은 주장을 반박했다. 그는 지능이 뛰어난 사람들 중 상당수는 트레이딩 실력이 형편없었고, 지능보다는 심리적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이 올바른 일인지는 잘 알지만 실제로 이를 제대로 실천하지는 못한다고 말한 것이다. 

  - 리처드 데니스는 엄청난 금액을 아주 침착하게 매매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사람 중 하나다. 많이 거래할 때에는 이익과 손실 금액을 떠올리게 되어 평정심을 유지하기가 더욱 어려워지고, 감정이 겉으로 드러나며 의연함을 유지하기가 더 힘들어진다. 돈과 트레이딩을 서로 분리해야 한다는 생각은 터틀 수련생들에 아주 중요한 내용으로 각인되었다. 

  - 리처드 데니스는 재앙 같은 첫해에 거의 파산할 뻔했다. 11월 첫날에만 200만달러를 잃고, 이후 한동안 아슬아슬한 상황이 이어졌다. 이 때문에 리처드 데니스와 윌리엄 에크하르트는 트레이딩 관련 모든 사항을 재점검했다. 그들이 채택했던 아이디어와 트레이딩 기법을 컴퓨터에 모조리 입력해 테스트했다. 성공하는 트레이더는 자신의 기법을 코드화하고 규칙화하는 사람이다.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아이디어는 반드시 시험해봐야 한다. 

  - 매매는 제한이 없는 환경에서 이루어졌다. 언제든 어디서든 기회만 있다면 얼마든 베팅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제한이 없는 상황에서 자신의 한정된 자본을 지키지 못한다면 머지않아 돈을 모조리 잃을 수 있다. 수업 시간에 나온 교훈들로 이러한 '투기적 거래'의 딜레마가 해결되었다. 시장은 제로섬 게임이므로, 조금이라도 이익을 내려면 다른 사람들로부터 돈을 따와야 한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다시 말해 누구나 활용하는 기법을 써서는 게임에서 이길 수 없다. 이는 꼭 돈을 벌지는 못하더라도 장기적으로 일관성 있는 좋은 트레이딩을 해야만 훌륭한 성과를 낼 가능성이 급격히 올라간다는 뜻이다. 

 

 

4. 투자 철학 

[성공적인 매매를 하고 싶다면 규칙을 지켜라]

1) 과학적 방법론

  - 기존 지식을 수정 및 통합하고 새로운 지식을 습득하며 현상을 면밀히 조사하는 일련의 기술이다. 이는 관찰 및 측정이 가능하고 경험적 증거에 기초를 두며 추론의 법칙의 지배를 받는다. 

  - 과학적 방법론은 일곱 가지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1. 문제에 대한 정의
2. 정보와 자료의 수집
3. 가설 설정
4. 실험 수행과 데이터 수집
5. 데이터 분석
6. 데이터 해석 및 새로운 가설의 출발점이 되는 결론 도출
7. 결과 공표

  - 리처드 데니스와 윌리엄 에크하르트는 수련생들이 트레이더가 되기 전에 먼저 과학자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이는 '올바른 작업'을 해야 한다는 신념의 증거이기도 했다. 

  - 리처드 데니스는 탄탄한 철학적 기반 없이 트레이딩을 하면 위험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론이 기반을 이루고 숫자는 이를 확인하는 데 쓰여야 한다고 여겼다. 그는 "시작에도 끝에도 이론적 기틀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터틀은 추세를 따라 트레이딩 하도록 훈련받았다. 이는 다시 말해 돈을 벌려면 '추세'가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추세추종 트레이더들은 늘 시장이 추세를 보일 때를 기다려 투자한다. 수익이 목표이기 때문에 위로든 아래로든 큰 추세를 따라잡아 매매한다. 

  - 추세추종 기법이라고 해서 매매할 때마다 수익을 내지는 못한다. 사실 거래가 틀렸다면 이를 인정하고 손절하여 다음으로 넘어간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수익을 올릴 수 있다고 본다. 

  - 1960년대 리처드 돈치안은 추세추종 투자 철학을 소위 '주간 매매규칙'으로 요약 정리했다. 이 규칙은 실제 활용하기가 아주 쉽다. 

가격이 월요일부터 기산하는 최근 2주(상품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최고치를 상향 돌파하면 쇼트 포지션을 정리하고 매수한다. 반대로 2주 최저치를 하향 돌파하면 롱 포지션을 청산하고 매도한다. 

  - '숫자를 매매한다'는 말은 감정에 휘둘리지 않기 위해 세상을 '관조적'으로 봐야 한다는 리처드 데니스의 주장을 대변하는 표현이기도 하다. 그는 수련생들이 가격 분석을 제대로 이해하도록 지도했다. 처음에는 '지능이 실체이고 가격이 현상이라고 판단했다가 나중에 가격이 실체이고 지능이 현상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 리처드 데니스는 단호히 말했다. "곡물 수확량, 실업률, 인플레이션 등은 트레이더에게는 추상적 이론에 불과하다. 이것들은 가격 예측에도 도움을 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과거의 시장 움직임도 설명하지 못한다."

  - 터틀 수련생들의 핵심 원칙은 100년 전 위대한 투자자들이 실천했던 규칙과 같다. 

원금이 늘어나거나 줄어든다고 해서 동요하지 마라.
평정심을 유지하고 일관되게 움직여라.
과정이 아닌 결과로 자신을 판단하라. 
시장이 특정 방향으로 움직일 때 어떻게 대응할지 알고 있어라. 
현실에서는 불가능해 보이는 일도 종종 일어난다. 
날마다 계획을 수립하고 다음날 일어날 수 있는 비상사태를 검토하라. 
어디에서 수익을 올리고 손실을 볼 수 있는지 살펴보고 이와 관련한 확률도 파악하라. 

  - 훈련 첫날 윌리엄 에크하르트는 최적의 트레이딩에 필요한 질문 다섯 개를 추렸다. 

1. 시장 상태는 어떠한가? -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이 어느 수준인가?"라는 뜻이다. 
2. 시장 변동성은 얼마인가? - 시장이 얼마까지 상승하고 하락할지 날마다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 수련생들은 일간 변동성을 지칭하는 N이라는 표현을 즐겨 썼다. 
-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 일반적으로 위험도 증가한다. 
3. 투자하는 자금은 얼마인가? - 수련생들은 자신이 투자하는 자금이 얼마인지 항상 알고 있어야 한다. 모든 투자 규칙이 투자금의 규모에 맞춰지기 때문이다. 
4. 매매규칙과 투자 방향은 무엇인가? - 장이 열리기 전부터 매수매도 전투 계획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 언제 어느 시장에서든 가격 움직임에 따라 언제 사고팔지를 정한 정밀한 규칙이 있어야 한다. 
- 수련생들에게는 S1과 S2라는 두 가지 규칙이 있었는데, 이 규칙들은 진입과 청산에 대한 것이다. 기본적으로 S1은 시장이 최근 20일 최고치를 상향 돌파하면 매수하고, 20일 최저치를 하향 돌차하면 매도하는 규칙이다. 
5. 트레이더나 고객의 위험회피 성향은 어떠한가? - 시장은 언제든 본인의 예상과 반대로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투자금의 아주 일부만 투자해야 한다. 
- 예컨대, 처음에는 작게 1만달러의 2퍼센트만 베팅해야 계속 살아남아 매매할 수 있고, 더 큰 기회를 노릴 수 있다. 

 

2) 토론

  - 윌리엄 에크하르트의 본질적 주장은 다음과 같다. "당신은 특출 나지 않다. 다시 말해 시장보다 똑똑하지 않다. 출신이 어디든 머리가 아무리 좋든 마찬가지다. 직면하는 문제가 똑같고 조건도 같다면 그냥 규칙을 따라야만 한다."

  - 리처드 데니스는 날마다 규칙을 따르고 올바르게 매매하려면, 아주 끈질겨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수련생들은 규칙을 끝까지 준수하고, 필요시 방아쇠를 당길 수 있을 만한 자신감을 지녀야 했다. 망설이다가는 제로섬 게임인 시장에서 끝장나기 십상이다. 

  - 윌리엄 에크하르트는 다섯 개의 질문 중 투자자금, 매매규칙, 위험회피 성향을 특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이 모두 현재를 기반으로 하는 주관적 질문이다. 풀어 설명하자면 수련생들은 지금 자금을 얼마나 투자할지, 어떻게 진입하고 청산할지, 매매 시 위험을 얼마나 감수할지만 통제할 수 있다. 

  - 윌리엄 에크하르트는 변동성(N) 이슈처럼 객관성 유지의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해 수련생들이 '과거를 떠올리지 않는 트레이딩'을 하기를 원했다. 5년 전 10만달러를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5만달러밖에 없다면, 이전에 10만달러를 보유했었다는 전제로 매매결정을 내려서는 안 되고, 현재 5만달러를 지니고 있다는 현실을 토대로 의사 결정해야 한다. 

 

 ① 이익을 어떻게 잘 관리하느냐가 승자와 패자를 결정짓는다. 훌륭한 트레이더는 현재 보유한 자금 규모에 맞춰 트레이딩을 조절한다. 

- 수련생들은 추가로 벌어들인 돈도 자신의 원래 자금처럼 똑같이 조심스레 관리하고 절제 있게 다뤄야 했다.

 

 ② 트레이더들 모두 같은 기회를 맞이한다면 매매도 똑같이 해야 한다. 개인적 감정이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 

- 윌리엄 에크하르트는 수련생들이 "돈을 어느 정도 벌었으니 이제는 뭔가 다르게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들이 돈을 얼마나 벌었든 이전과 똑같은 절차로 매매해야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른 수련생이 50% 수익을 거두었다는 사실을 아는 순간, 전과 똑같이 트레이딩해야 한다는 윌리엄 에크하르트의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이 때문에 투자 규칙은 큰 평가이익을 올린 트레이더들이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거나 규칙을 깨지 못하도록 고안되었다. 

 

 ③ 터틀 수련생들이 한 시장에서 손실을 보았더라도 정한 규칙대로 계속 투자해야 한다. 손실을 받아들이고 관리하는 것도 게임의 일부다. 

- 트레이더들은 손실을 기록하게 되면 바로 그 시장에서 같은 포지션으로 매매하는 경향이 있는데, 윌리엄 에크하르트는 이를 '피를 부르는 복수'라고 표현했다. 이는 옛 기억에 집착하는 실수의 일종으로 언제나 파멸을 부를 뿐이다. 

- 수련생들은 언제 어느 시장에서 돈을 벌든 또는 잃든 거기에 집착하지 말라고 배웠다. 과거에 얽매이지 말고, 그때그때의 투자 기회에 집중하라는 가르침을 받았다. '손실'을 볼 때도 원칙은 같다. 이를테면 수련생들은 손실이 발생할 경우 가격이 추가로 하락해 더욱 큰 손실을 보기 전에 털고 나와야 한다고 배웠다. 작은 손실 후 포지션을 청산한 뒤 다시 매입 신호가 나오면 또 투자할 수 있다. 

 

 ④ 터틀 수련생들은 진입 시점에만 얽매이지 말고 빠져나오는 시점에 대해 더욱 고민하라고 배웠다. 

- 윌리엄 에크하르트는 "일단 투자를 시작하고 나면 이후의 매매 의사결정은 처음 진입가격의 영향을 받아서는 안 된다"고 못 박았다. 그는 수련생들이 첫 진입가격을 모르는 듯 투자하기를 바랐다. 

- 리처드 데니스는 손실 관리의 중요성을 계속 강조했다. 비결은 이익 포지션보다는 손실 포지션을 잘 관리하는 데 있다. 손실 포지션을 잘 관리해야 큰 추세가 나타났을 때 올바른 포지션을 잡을 기회를 노릴 수 있다. 

- C&D 커머더티스는 성공했지만, 사실은 전체 매매 건수의 90%에서 손실을 보았고 나머지 10%에서 대형 홈런을 치면서 전체적으로 이익을 거두었다. 커다란 수익을 올리기 위해 오래 기다려야 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심리적으로 이런 지루한 기다림을 견디지 못한다. 

 

 ⑤ 상승 또는 하락 추세가 얼마나 이어질지 예측하려 하지 마라.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 수련생들은 가격이 되돌아오기만을 기다려서는 안 된다. 수련생들은 달러에 사려던 대두 가격이 9달러로 오르면 대두가 다시 8달러로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대신 9달러에 매수하도록 훈련받았다. 끝내 8달러로 하락하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 과학적 접근법을 항상 강조한 리처드 데니스는 포지션을 보유하면 그 이유가 있는 것이니 투자 근거가 바뀌지 않는 한 계속 보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 예외도 있다. 예컨대 구글이 개장하자마자 510달러 위에서 거래되었지만 일주일 뒤에는 거의 30포인트나 하락한 483달러에서 움직였다. 그런 뒤 다시 510달러로 회복된다면, 이후에 구글이 상승할지 하락할지 알 수 있을까? 알 수 없다. 이때는 가격을 예측하지 말고, 가격의 움직임에 바탕을 둔 규칙을 따라 매매하면 된다. 

 

 ⑥ 변동성 측정은 수련생들에게 정말 중요하다.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은 대부분 이를 무시하고 매매한다. 

- 어느 주식이나 선물계약의 경우, 현재 가격보다는 시장의 변동성을 항상 확인하는 일이 더 중요하다. 변동성을 알아야 제한된 자본금 중에서 주식을 얼마만큼 매수하거나 공매도해야 적절한지를 판단할 수 있다.

- 데니스의 진정한 최초 투자자로 불리는 브래들리 로터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트레이더는 기분이 좋든 나쁘든 관계없이 그저 규칙을 따라야만 한다. 이는 수익을 거두는 포지션에는 투자를 늘리고, 손실을 기록 중인 포지션에는 투자를 줄이는 아주 공격적인 방식의 매우 단순한 추세추종 시스템이다. 크게 성공하는 사람들은 모두 규칙을 묵묵히 따르고 결코 벗어나지 않는 수련생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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